63장 爲無爲 위무위 – 무위를 행하고 #무위 #내맡김 #비움 #명상

​”무위를 행하고, 일거리를 없애는 것을 일로 삼고, 맛을 없애는 것을 참맛으로 삼는다. 작은 것을 크게 여기고, 적은 것을 많게 여기며, 원한을 덕으로 갚는다.
어려운 일을 도모하는 자는 쉬운 데에서 [착수]하고, 큰일을 하는 자는 그 작은 일에서 [시작]한다.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에서 일어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세세한 일에서 일어난다.
이 때문에 성인은 끝내 위대하다고 여기지 않으므로 그 위대함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무릇 가볍게 다른 사람의 요구를 승낙하게 되면 반드시 믿음이 부족하고, 대부분 쉬운 일에는 반드시 많은 어려움이 닥친다. 이 때문에 성인은 오히려 그것(모든 일)을 어렵게 여기므로 끝내 어려움이없게 되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 장의 내용은 앞서 나왔던 내용들의 반복이기도 하다.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위무위, 사무사, 미무미
무위를 행하고, 일거리를 없애는 것을 일로 삼고, 맛을 없애는 것을 참맛으로 삼는다.

무위라고 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을 뜻하지 않는다. 깊은 내면, 근원, 도道의 경지와 감응하여 움직이고(움직여지고) 행한다. 그러므로 매사에 마음씀이 없다. 우리 마음의 일상을 잘 관찰해보면 사사건건 마음으로부터 저항을 받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단순작업을 해야할 때를 떠올려보자. 같은 일을 하더라도 어떤 때는 힘내서 잘해보자! 빨리 끝내자! 하고 의지를 세우면 일이 수월하게 착착 진행된다. 반면에 하기 싫다, 왜 이런 일을 해야 하지? 하는 생각에 빠져있으면 몸에서부터 기운이 빠지고 일 진행도 더디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PC로 몇 시간 동안 하던 워드작업을 저장 못하고 날렸던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 일을 처음부터 새로해야 할 때, 그래! 어차피 다시 해야 될 일, 두 번째니까 더 빨리 할 수 있다! 고 생각하면 별 거 아닌 듯 느껴지고 힘이 생긴다. 반대의 생각에 계속 빠져있다면 어딘가에 머리를 박아버리고 싶을 정도일 거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있는데 열흘 동안 하던 작업을 날렸다 치자. 인공지능은 속상할까? 분명히 아닐 것이다.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무심無心이다. 반면 우리에겐 마음이 있다. 더구나 온갖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어지럽게 난무하는 거친 마음이다. 그래서 그 마음에서 저항이 일어나고, 하고 싶다, 하기 싫다 하는 여러가지 ‘부가적인’ 현실들을 일으킨다. 원래 그대로,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행하는 일이 되지 않는다.

완전히 깨달은 이, 도와 궁극적으로 하나된 이는 무심無心이라고 본다. 더 나아가 그저 무심만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이런 마음 저런 마음 자유롭게 부려쓸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무심의 어떤 뉘앙스처럼 그저 냉정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괴로움 가득하여 고통 받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고 자비를 베풀줄도 아는 것이다. 붓다께서 처음 대각에 이르셨을 때 세상의 존재들이 불법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리라고 보고 홀로 안고 가시려고 했다고 전해진다. 감히 헤아려보자면 이 경우는 자비심보다 이성적인 판단이 먼저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범천은 그런 붓다의 마음을 회유하여 미혹한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펴시도록 설득했다. 이렇게 마음을 돌리신 붓다에게 자비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마음을 있다 혹은 없다(무심)의 두 가지 상태로만 정의할 필요는 없다. 궁극을 향해 수행해 나아가는 우리의 마음은 무수히 많은 마음의 단계들을 통과해 나가는 중이다. 그런 마음의 레벨 중 어느 단계쯤 있는지 단적으로 규정하기는 어렵겠지만 일상의 사건들을 통해 자신의 마음에 일어나는 저항들을 잘 관찰해보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음이 투명하다면 많은 일들이, 더 큰 일들도 작은 일처럼 통과해 지나갈 것이고, 반대로 비워내야 할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마음 때문에 걸려 넘어지는 일들도 수두룩할 것이다.

일을 억지로 많이 벌리지 말라.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의 감각을 절제하라. 감각적인 대상물을 취하여 그 속에 빠지지 말라. 점점 더 감각적인 자극-반응의 연결고리에 빠져들어가고 있는 우리들, 현대인들에 대한 노자의 경고다.

“작은 것을 크게 여기고, 적은 것을 많게 여기며, 원한을 덕으로 갚는다.
어려운 일을 도모하는 자는 쉬운 데에서 [착수]하고, 큰일을 하는 자는 그 작은 일에서 [시작]한다.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에서 일어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세세한 일에서 일어난다.
이 때문에 성인은 끝내 위대하다고 여기지 않으므로 그 위대함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무릇 가볍게 다른 사람의 요구를 승낙하게 되면 반드시 믿음이 부족하고, 대부분 쉬운 일에는 반드시 많은 어려움이 닥친다. 이 때문에 성인은 오히려 그것(모든 일)을 어렵게 여기므로 끝내 어려움이없게 되는 것이다.”

노자는 역시 상대적인 것들, 요즘 표현으로 하면 ‘역발상’ 을 중요시한다. 큰 것보다 작은 것, 많은 것 보다 적은 것, 어려운 일 보다는 쉬운 일, 큰 일 보다는 작은 일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바탐업(bottom-up) 방식이 일이 이루어지는 더 고차원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2020년 6월, 현재진행형인 일들을 본다. 코로나19로 전인류가 몸살을 앓고 있다. 많은 이들이 죽었고, 죽어가고, 고통 받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지구적으로 쓰나미처럼 휩쓸며 기존의 정치, 경제, 의료체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많은 미래예측학자와 저명한 인사들이 세계는 코로나 전과 후로 나뉠 것이라 단언하고 있다. 예컨대 전부터 기본소득의 논의는 있어 왔지만 실제 적용 부분에서는 진전이 거의 없었다. 그러던 것이 역설적으로 코로나로 인해 현실화 되었다. 원격 강의, 원격 진료, 원격 회의, 재택근무 등의 변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은 단 한 사람의 감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렇게 가장 ‘작은 것’에서 시작된 일파만파의 물결은 (지구상에서) 가장 커다란, 지구 전체를 바꾸고 있다. 어느 큰 정부, 큰 대통령이나 리더,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가장 작은 존재 중 하나인 바이러스가 해낸 것인지도 모른다.

개인, 국가, 심지어는 인류의 차원에서 보아도 작금의 사태는 당장은 불행이고 극복해 나가야 할 재난임이 분명하다. 길게 본다면, 시야와 관점의 지평을 최대한 크게 활짝 열고 본다면 이것이 반드시 그러리라는 – 불행과 재난이라는 – 법은 없다. 일개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만큼 크고 깊은 코스모스의 차원에서는 이것이 결국 순리일지도 모른다. 거대한 우주적 순리의 시작도 가장 작은 것으로부터 비롯되었으므로…

이런 관점에서 다시 노자를 본다. 일견 어불성설처럼 느껴지는 표현에 대해서도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어려운 일을 도모하는 자者 (꼭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모든 존재, 아주 작은 존재, 나비효과라 불리듯이 아주 작은 현상도 포함될 수 있다) 는 쉬운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큰 일도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크고 작음 – 마찬가지로 길고 짧음, 높고 낮음, 빠르고 느림 등 그런 모든 것 – 은 절대적으로 상대적이다. 인간의 잣대로 보아 제 아무리 큰 것이라 해도 거대한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작은 먼지 하나보다도 작은 크기일 수 있다. 근본적인 도道의 관점에서 크다 작다, 상대적인 것들을 논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큰 쓰임이 되고자 하면 두 가지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 하나는 크다 작다 하는 상대적인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욕심이 앞선 마음일 것이다. 그러니 그저 최선을 다해 비우고, 되는만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갈뿐. 그 속에서 크든 작든 알아서의 ‘쓰임’ 은 드러날 터이니.

무위無爲나 내맡김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임이 아니다. 포기도 자포자기도 나태의 의미도 아니다. 이것은 마음씀 – 집착이 없는 최선의 행위다. 집착이 없으려면 평소 힘써 비워야 할 것이고, 우리는 정확히 무엇이 최선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비워내기가 충만할 때, 참된 자신으로 살아갈 때 모든 행위들은 ‘최선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실히 강조하는 옛 고사성어인 진인사와 대천명은 직렬적인 두 구절이 아니라 병렬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진인사 하고 (난 후) 대천명할 것이 아니라, 진인사와 동시에 대천명이라는 말이다. 진인사할 일은 비움이고 대천명할 일은 내맡김이다. 비움과 동시에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맡긴다. 현실적인 최선을 다함과 동시에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


明濟 전용석
한흐름 마음비움센터(hanflow.kr) 한흐름 기명상원